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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힘든 일’의 해묵은 등식이 깨지고 있다. 기술 발전이 이룬 성과이기는 하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가 농업에 뛰어들면서 변화를 앞당기는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다루던 MZ세대 청년농에게 ‘첨단농업’이란 이질적 결합이 아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종과 축산을 가리지 않는다. MZ세대 청년농을 어떻게 지원하느냐가 첨단농업 도입 속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달음농장 김영웅·오아람씨
청년농 임대농장서 딸기 재배
당도·경도 조절해 생산성 올려
충남 부여군귀농인희망센터 앞. 이곳엔 번듯한 비닐하우스 한 동이 세워져 있다. ‘청년농업인 경영실습 임대농장’이다. 친구 사이인 김영웅씨(31·사진 왼쪽)와 오아람씨(31)가 딸기를 재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카이스트 기계학과 출신의 김영웅 달음농장 대표는 졸업 후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며 자동화기기를 연구·개발하는 일을 했다. 전형적인 ‘공대 오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곧 직장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잘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농업에 도전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특히 제가 잘 아는 분야인 ‘자동화’를 농업에 접목하면 ‘대박’ 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스마트팜이 대세잖아요.”
그렇게 ‘농업’을 하겠다 마음먹은 김 대표는 고등학교 친구인 오아람씨에게 함께 귀농하자고 권유했다. 단역배우 등으로 활동하며 모델을 꿈꾸던 오씨의 끼와 감각을 마케팅·디자인 등에서 살릴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3년 전부터 설득하더라고요. 그땐 서울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했는데, 남자 관리사를 꺼리는 고객들이 많아 쉽지 않았어요. 데이터를 이용한 첨단농업을 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그런 농업이라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고도 없는 부여로 내려왔죠.”
경험도 없고, 농업과 인연도 없던 청년들의 농업 도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1100㎡(약 330평) 규모의 농장은 2020년 부여군에서 실시한 ‘청년농업인 경영실습 임대농장 공모사업’에 응모해 마련했다. 3년간 연 30만원의 임차료만 내면 되는 데다 스마트온실 설비, 수경 재배시설, 환경조절 장비 등 첨단설비가 설치돼 있어 초기 투자비용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들의 첫 도전은 실패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야 딸기를 심었지만, 3개월(올해 3∼5월)간 수확량은 인근 농가들이 동일 면적에서 11∼5월 수확한 양과 비슷했다. 가격도 좋았다. 비결을 묻자 ‘실험’과 ‘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귀농하기 전부터 조그만 규모로 실험을 계속하면서 미리 데이터를 쌓았거든요. 농사기술을 선진 농가나 영농교육 등을 통해 배운 게 아니라 책으로 배웠어요. 경험 많은 농민에게서 설명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은 수치화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보니 숫자로 설명해주지는 못하더라고요. 데이터화할 수 있는 숫자를 책 속에서 찾았습니다.”
소규모 실험을 거듭하며 축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출하시기와 당도·경도를 조절해 첫 작기에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시설을 더 보완할 계획이다. 자동 제어되는 에어컨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을 설치해 생산성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제 목표는 990㎡(300평) 기준으로 10t 이상 수확해 관행농법보다 3배 정도 수확량을 늘리는 거예요. 데이터를 이용한 농업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22.09.17